1부. 개념 · 04
브랜딩은 하는게 아니라 되는거다. 일단 되고나면 할수도 있다.
2026.08.26
브랜딩을 얘기하기 위해서 브랜드를 먼저 이야기하자. 단순한 이름이나 상표, 로고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브랜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이미지라는 개념을 포함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브랜드가 잠재 고객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기업이 만들고 유지하려는 모습을 말한다. 쉽게 얘기하면 추구미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는 실제로 소비자가 인식하는 모습이다. 누구나 그렇듯 추구미와 현실의 갭은 존재한다. 이 갭을 줄이기 위한 활동과 과정을 브랜딩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원하는 추구미와 소비자가 실제로 보는 현실의 갭은 얼마나 좁혀지고 있을까? 이건 소비자가 우리를 어떤 이미지로 인식하는지 직접 물어보고, 우리가 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비교해 보면 된다. 종종 인터넷을 하다 보면 뜨는 대기업의 설문 조사 팝업이나 메일을 떠올리면 쉽다. 그런데 브랜딩이 의도대로 되고 있는지와 별개로, 그 브랜드가 시장에서 얼마나 힘을 갖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대표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있다. 내 추구미가 있든 말든 내 주변에 지인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단 지인이 많아야 한다. ‘브랜드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는 브랜드 인지도로 평가할 수 있다. 또 다른 지표로는 브랜드 선호도가 있다. 다들 싫어해서 유명한 경우도 있다. 일단 좋아해야 한다. 추구미가 비호감인 경우는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드물어서 배제하고 이야기하겠다. 그 외에도 얼마나 추천하고 싶은가, 충성도가 얼마나 높은가, 재구매를 얼마나 하는가 등등 설문 조사를 하면서 자주 보던 문항들로 평가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지표들을 종합하면 브랜드 파워를 가늠할 수 있다. 같은 경쟁판 안에서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브랜드의 힘이다.
근데 내가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장황하게 쓰는 게 아니다. 브랜딩이 이렇게 중요한데, 대부분이 이 단추를 잘못 끼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많은 작은 브랜드가 시작부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완성하려고 한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지 정하고, 그 모습과 조금이라도 어긋날 것 같은 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브랜드 감도와 맞지 않아요.” “그런 광고를 하면 브랜드 이미지가 망가져요.” 아직 그 브랜드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이미 거대한 브랜드라도 된 것처럼 행동의 범위부터 좁힌다.
물론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필요하다. 최소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추구미를 정했다고 해서 소비자가 그대로 인식해 주는 건 아니다. 기업이 만든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시장에서 검증되기 전까지는 일방적인 희망에 가깝다. 실제 브랜드 이미지는 상품을 팔고, 광고하고, 고객을 만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내가 가만히 앉아서 나만 가꾸고 있는데도 주변에 알아서 친구가 몰려드는 경우는 정말 극소수다. 대부분은 어색하고 불편해도 옆자리 친구, 앞·뒷자리 친구들에게 말도 걸고 인사도 하고 부딪혀 보면서 친구가 된다. 가만히 우아하게 있어도 주변에 친구들이 몰려드는 사람은 극소수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고상하게 아이덴티티만 고집한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경우는 드물다. 처절하게 이것저것 다 해 봐야 사람들이 알아준다. 물론 아무거나 하라는 뜻은 아니다.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브랜드 감도를 지킨다는 이유로 시장과 만날 기회부터 닫지 말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무엇이 먹힐지 모른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특징을 소비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특징 때문에 사람들이 상품을 사고, 다시 사고, 주변에 추천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의도한 것과 다른 이유로 브랜드가 알려지고 사랑받을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브랜드가 어떤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소비자가 우리를 기억하는 이유가 생기고, 반복해서 구매하는 이유가 생기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때 사용하는 말이 생긴다. 최초의 브랜드 이미지는 회의실에서 나오기 힘들다.
엄밀히 말하면 브랜딩이라는 활동이 저절로 된다는 뜻은 아니다. 경험도 자본도 없는 브랜드의 최초 이미지는 기업이 계획한 그대로 만들어지기보다 시장의 반응 속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최초의 브랜딩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거라고 표현한다. 일단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여러 활동을 시도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고, 그중 반복해서 나타나는 인식과 선택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기업이 정한 추구미를 소비자에게 억지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실제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관찰하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도 함께 다듬어야 한다.
그렇다고 브랜딩을 영원히 운에 맡기라는 뜻은 아니다. 일단 브랜드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의도적인 브랜딩도 가능하다. 소비자가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고, 어떤 지점에서 좋아하고 선택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미 만들어진 강점은 더 선명하게 만들고, 원하지 않는 이미지는 바꾸고, 새로운 시장에 맞춰 인식을 확장할 수 있다.
3CE는 아무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완성된 브랜드가 아니다. 스타일난다는 패션을 판매하면서 자신들만의 스타일과 이미지를 먼저 만들었고, 그 경험 위에서 3CE를 선보였다. 이미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고, 어떤 이미지에 매력을 느끼며, 그 이미지를 상품과 콘텐츠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경험한 뒤였다.
그래서 3CE가 초반부터 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타일난다를 통해 축적한 경험을 화장품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한 결과에 가깝다. 한 번 브랜드가 되어 본 경험을 다음 브랜드의 의도적인 브랜딩으로 연결한 좋은 사례다.
브랜딩을 해 본 사람이나 이미 브랜드를 만들어 본 사람이 브랜딩을 더 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을 정해야 하고, 무엇은 시장에 맡겨야 하고, 언제 밀어붙이고 언제 수정해야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 자본까지 더해지면 상품·광고·유통·CS 같은 여러 수단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브랜딩은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을 정해 놓고 지키는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시장에서 브랜드가 되는 과정을 겪고, 그다음에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 모습을 의도적으로 가까워지게 만드는 일이다.
브랜딩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거다. 일단 되고 나면 할 수도 있다.